모기 (The Mosquito)
지은이 티모시 C. 와인가드(Timothy C. Winegard)
옮긴이 서종민
출판사 ㈜로크미디어
단일 개체로는 작은 곤충에 불과한 모기가 인류 역사에 일으킨 거대한 흐름을 되짚는 책이다. 모기는 말라리아를 비롯한 모기 매개 질병들을 인간에게 옮기며 중요한 인류 정치∙경제∙문화의 현재 모습을 구현하는 데 일조했다. 고대 그리스 아테네의 패권과 알렉산더 대왕의 세계 원정, 로마의 부흥과 쇠퇴, 콜럼버스 교환과 아프리카 노예, 아메리카 식민지 독립과 미합중국(USA) 탄생 등 굵직한 역사의 흐름에는 항상 모기(와 모기 매개 질병)가 중요한 역할을 했다고 분석한다. 역사가 항상 그렇듯 ‘모기’라는 하나의 요인으로 이뤄지진 않았겠지만, 이 ‘모기’가 없었다면 지구의 모습은 현재와 매우 달랐을 것이다.
아래는 미국 남북전쟁 챕터 중 일부를 발췌한 문단이다.
“(말라리아가) 북부 연방의 승리를 수개월 혹은 수년씩 지연시켰다. 장기적으로 보자면 이는 축하할 만한 일이었다. 본래 북부는 노예 해방이 아니라 국가의 보존만을 목표로 삼았다. (중략) 전쟁이 길어질수록 연방정부는 점점 더 인종적 조치를 고려하게 되었다.” 찰스 만은 이 고된 전쟁을 연장시키는 데 있어서 모기가 담당한 역할을 생각한다면 “노예 해방 선언 또한 어느 정도 말라리아에게 그 공이 있다”고 말했다. 1862년 9월 앤티텀 전투에서 북부연방이 첫 승리(보다 정확히 말하자면 무승부)를 거둔 이후, 링컨은 그의 임기 사상 가장 유명하고 영향력 있었던 행정명령을 발행하여 전쟁의 방향과 국가 자체를 영구적으로 바꾸어놓았다.
모기가 미국의 탄생에 큰 기여를 했다는 부분이 흥미로웠다. 이에 따르면 과장 조금 붙여서 현 세계의 지정학적 구조는 모기가 만들어냈다고 해도 되지 않을까?
말라리아를 비롯한 모기 매개 질병은 약 8천여 년 전, 아프리카 반투족 농부들의 개척을 계기로 인류와 조우하게 되었다고 책은 밝히고 있다. 이후 인류가 아프리카 대륙을 벗어나며 모기와 질병이 함께 따라나갔고 유럽을 비롯한 광범위한 지역에 모기 매개 질병이 인류와 함께 하기 시작했다. 책은 주로 유럽과 신대륙에 있었던 모기 매개 질병의 영향과 역사적 궤적을 고찰하고 있다. 동양의 이야기는 거의 없는데 모기 매개 질병이 동양 쪽에서는 주요하지 않아서 그랬는지, 혹은 세계사의 흐름이 (특히 중세 이후)서유럽 중심으로 움직여서 그랬는지는 잘 모르겠다. 생각해보면 한국사에서 말라리아가 부각된 것은 본 적이 없는 것 같다.
모기와의 전쟁은 현대에도 계속되고 있다. 책의 말미에는 ‘유전자가위(CRISPR)’ 기술을 소개하며, 인류는 모기와의 싸움에서 한 발자국 더 나아갈 것이라고 평가했다. 유전자 편집을 통한 모기 매개 질병 전파의 차단 혹은, 모기의 멸종 또한 가능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물론 이러한 시도가 매우 위험한 결과로 돌아올 수 있다는 점을 간과해선 안 되겠지만, 어쨌든 저자는 유전자가위 기술을 활용한 질병 퇴치를 지지하고 있다.
찰스 다윈은 1859년 획기적인 저서 “종의 기원(On the Origion of Species)”에서 “자연선택은 늘 행동에 나설 준비가 되어 있는 힘이다. 자연의 작품은 예술 작품에 비해 그러하듯, 인간의 미약한 노력에 비하면 가늠할 수 없을 정도로 우월하다”고 말했다. 다윈 씨가 동의할지는 모르지만, 나는 유전자가위 또한 일종의 자연선택이라 생각한다. 뱀파이어 같은 우리의 포식자 앞에서 수많은 약물과 살충제가 실패를 거듭하자 우리는 말라리아 백신과 유전자가위라는 은제 총알을 만들고 있으며, 이를 들고 결정적인 아마겟돈 전투를 벌여 모기와의 영원한 전쟁을 끝내려 한다.
[목 차]
1. 위험한 쌍둥이 _ 모기와 질병
2. 적자생존 _ 열병의 악마와 미식축구 그리고 겸상적혈구 안전장치
3. 얼룩날개 장군 _ 아테네부터 알렉산드로스까지
4. 모기 군단 _ 로마 제국의 흥망성쇠
5. 완고한 모기들 _ 신앙의 위기와 십자군
6. 모기떼 _ 칭기즈 칸과 몽골 제국
7. 콜럼버스의 교환 _ 모기와 지구촌
8. 우연한 정복자 _ 아프리카 노예와 모기의 아메리카 대륙 합병
9. 길들임 _ 모기가 만든 풍경과 신화 그리고 아메리카의 씨앗
10. 나라의 악당 _ 모기와 대영 제국의 탄생
11. 질병의 도가니 _ 식민지 전쟁과 새로운 세계 질서
12. 양도 불가능한 모기들 _ 미국 독립 혁명
13. 모기 용병 _ 자유의 전쟁과 아메리카 대륙 편성
14. 명백한 운명의 모기 _ 목화와 노예, 멕시코 그리고 미국 남부
15. 우리 본성의 악한 천사 _ 미국 남북전쟁
16. 모기 정체 밝히기 _ 질병과 제국주의
17. 내 이름은 앤, 당신을 만나고 싶어 죽겠어요 _ 제2차 세계 대전과 닥터 수스 그리고 DDT
18. 침묵의 봄과 슈퍼버그 _ 모기 르네상스
19. 현대의 모기와 모기 매개 질병 _ 과연 모기는 멸종의 문턱에 서 있는가?